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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행지에 들고 온 소설책은 김연수의 <사월의 미, 칠월의 솔>. 시공간을 되돌리며 끝끝내 해석되지 않는 것들을 잡으려 노력했던 김연수 소설은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에서 절정을 찍었던 것 같다. 적당히 대충 갈무리하고 스스로 타협하며 마음 편한 길을 갈법도 한데 그는 절대 후일담 소설에 머무르지 않고 갈 때까지 가보기로 한 사람처럼 지난 시공간을 끊임없이 되돌리고 되돌려, 다시 해석했다.


그래서인지 여행지에서만 느끼는 알 수 없는 고요함이 밀려들 때, 김연수 소설을 읽는다. 지난 여행지에서는 <세계의 끝 여자친구>를 읽었던가? 정신없던 하루 일과가 끝나고 숙소에 와 누우면 어디선가 들려오는 낯선 소리에 문득 내가 전혀 해석할 수 없는 세계 속에 들어와 있음을 느낀다. 그때 타임리프를 한 듯한 그의 소설을 읽으면 그 외로움과 낯설음이 배가되어 역설적으로 여행이 더 여행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이번 소설은 좀 달라졌다. 지적 탐구가 멈춘 자리를 휴머니즘으로 채웠다. 소설은 내내 애틋했다. 되돌린 시공간을 다시 해석해내겠다는 의지는 없었다. 대신 그때, 거기 있었던 존재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그들의 삶을 충분히, 하지만 조심스럽게 들려주겠다는 따뜻한 마음이 가득했다. 화자의 생물학적 성별도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의 휴머니즘에 이 또한 의식적 노력으로 가미된 것일까?


글을 잘 쓴다는 건 축복이다. 이건 이것대로 매력적이다. 그는 질문을 구하자는 자의 포지셔닝을 다시 취할 것인가. 아니면 추억으로 향하는 길을 열어주는 이야기꾼이 될 것인가. 이 소설집을 내는데 5년의 시간이 걸렸다. 그는 그 사이에 산문집이나 잡설을 묶은 책 따위를 더 많이 냈고, 방송에서도 얼굴을 보였다. 그도 이제 창작자로 무언가를 왕성하게 생산할 때는 지났다는 의미인가? 이것은 내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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