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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유타야에서 1박을 계획했다. 보통 여행사 상품으로 당일치기를 많이 하던데 그렇게 간단히 둘러보고 오기보다는 좀 자세히 보고 싶었다. 역사 속에 남겨진 그들의 향기를 느껴보고 싶었다. 고고학적 취향과 호기심도 있었고... 오래된 것들은 다 그 나름대로 생각할 거리를 준다는 생각 때문에. 긴 시간의 흔적이 남겨진 곳에서는 시시각각으로 다른 삶의 조각들을 드러내보인다.  


아유타야는 한국으로 치면 경주같은 도시다. 굳이 입장료 내고 들어가지 않아도 어디서나 유적을 볼 수 있다. 집 앞마당에  떡하니 탑이 세워져 있기도 하다. 언젠가는 사람들 속에서 어떤 의미를 뿜어내고, 사람들과 희노애락을 함께하며 긴 세월을 보냈을 것들이 지금은 다만 흔적으로 남았을 뿐이다. 무엇인가를 읽어내려 한다. 의미를 부여한다. 전날 타이 국립박물관에 들린 것은 아유타야를 대비한 사전학습이었다. 아유타야는 한국으로 치면 조선 전기에서 중기 정도 사이에 존재했던 왕국이다.  


아유타야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늦은 오후였고, 흔히 추천하는대로 왓라차부라나부터 돌기 시작했을 때는 이미 해가 저물고 있었다. 



>> 왓라차부라나.


첫번째 태국여행이 끝났던 이년전. 동남아시아의 역사를 제대로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책을 한 권 사 읽었다. 동남아시아는 대체로 농작물이 풍부해 먹을 것 때문에 전쟁을 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온갖 이유로 전쟁을 했다. 인도차이나 반도는 주도권을 바꿔가며 영토를 주거니 받거니 했다.중국과 인도 때문에 크게 밖으로는 뻗어가지 않았다. 캄보디아인들이 크메르제국의 영광을 생각하듯, 태국인들은 수코타이나 아유타야를 떠올릴지 모른다. 영국과 독일 프랑스가 그렇고, 한국과 중국과 일본이 그렇듯 이들도 서로 서로 안좋은 역사적 경험이 남아 있을 것이다. 한 편으로는 누구든 역사의 전성기를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고 싶어한다. 어쨌거나 지금은 버마,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이 서로 서로 이웃하며 살아가고 있다. 


전쟁으로 인해 폐허가 된 사원은 오히려 마음을 가라앉혀 한없이 평온한 느낌을 주었다. 물론 조금 쓸쓸하게 느껴지기는 하지만, 슬픔이나 비참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웅장한 건축물은 대개 어떤 욕망의 결집이 극대화되는 시기에 지어지고, 정점에 이른 권력은 또 다른 욕망에 의해 쇠락한다. 권력을 상징하던 것들도 운명을 함께 한다. 그리고 남겨진 흔적들은 모든 희노애락을 겪고 이제는 다만 풍경의 일부가 되어버린 노파처럼 애틋하지만 평온하다. 여기서는 더 이상 싸울 일이 없다. 오르지 못할 욕망 때문에 괴로워할 일도 없고, 쇠락의 고통을 걱정할 필요도 없다. 마찬가지로 영광 또한 없다. 그저 흔적이 있다. 바로 그 흔적 위로 노을이 지고 해가진다. 사위어가는 빛이 마지막 힘을 다해 사원을 비춘다. 다양한 빛깔로 사원은 일렁인다. 






슬며시 나도 그 풍경의 일부가 되어본다. 해가 완전히 지고 실루엣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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