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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인 유적지를 둘러보는 게 주 목적일 때, 자전거는 아주 좋은 수단이다. 

너무 빠른 속도로 지나갈 때 유적지는 그저 관광지에 머무르고 만다. 

시간이 충분히 주어져 있다면 두 번, 세 번 다시 가봐도 좋다. 

매번 다른 시간의 결을 느낄 수 있을 것이고, 매번 새롭게 보일 것이다. 

같은 공간에 서로 다른 시간의 기억들이 압축되어 있는 공기는, 밀도가 매우 높아서 

가만히 돌아다니다 보면 몸 안에 무언가 꽉 차오르는 기분이 든다.  


시간이 너무 많지도, 적지도 않게 주어져 있다면 자전거가 좋다. 

곳곳에 멈출 곳이 많다면 언제든 마음껏 설 수 있는 자전거가 좋다. 

둘러봐야 할 곳이 너무 많거나 장소와 장소 사이 거리가 너무 멀지 않다면 자전거가 좋다. 

걷기는 너무 느리고 자동차가 너무 빠르다면 자전거가 좋다. 


태국(일본도)은 차선 진행방향이 한국과 반대다. 처음에 이거에 적응을 하느라 시간이 좀 걸렸다.

무의식적으로 몸에 밴 습관이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맞은 편에서 달려오는 차를 보고 아차하는 순간 역주행하고 있기 일쑤다. 

진행방향에 익숙해지면 우회전에 익숙해져야 한다. 

한국에선 좌회전이 어렵듯 태국에선 우회전이 어렵다. 

게다가 한국과 달리 태국에선 직진과 우회전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자연스레 자전거로 우회전을 하려면 가장 안쪽 차선으로 들어가야 한다. 

위험하다 싶으면 조금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그냥 돌아 돌아 가는 게 최선이다. 



뿌리 속에 박혀 있는 부처 얼굴로 유명한 왓 마하탓에서 다음날 일정을 시작한다. 

날이 맑다.자전거는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날이 좋으면 기분은 두 배, 세 배로 좋아진다. 

그런데 좀 덥다. 방콕이 30도 안팎이라면 3~4도쯤 더 더운 거 같은데. 
그래도 나무들이 시원시원해서 아주 넉넉하게 그늘을 제공해준다.
폐허에도 아랑곳없이 후덥지근한 기후 덕에 생명은 거침없이 자란다. 



코스는 대체로 블로그에 많이 언급된 순서대로 돌았다.


왓 라차부라나(전날 저녁)->왓 마하탓->왓 쁘라시 산펫 -> 몽콘 보핏(들어가보진 않음)

->왓 라까야수타람->수리 요타이 째디-> (다리 건너서) 왓 차이왓타나람


사원의 모습이 비슷비슷해서 유료인 경우 굳이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구경하기도 했다.

담장이 거의 없다시피해서 몰래 들어갈수도 있었지만 날이 무진 더워서 그럴 기운도 잘 안나고. 

한낮이 되자 사람도 지치고 개들도 지치고

의도 하지 않아도 이 곳에 오면 자연스럽게 슬로 라이프로 패턴이 바뀐다. 


왓 차이왓타나람까지 돌고 나면 선택을 해야 한다. 


다시 숙소로 돌아오던지 정반대 방향 끝까지 가서 새로운 사원을 찾아갈건지. 

체력적으로 지치기도 하고 날도 덥고 사원구경은 이 정도면 충분하겠다 싶어 다리를 건너 숙소 인근 번화가로 돌아온다. 식당에서 팟타이와 잘게 썬 닭볶음 그리고 맥주를 시켜 한 잔.

술이 한 잔 들어가니 제대로 더위를 먹은 듯 헤롱헤롱거리는데 배까지 부르니 완전 힘들다. 

넉넉히 쉬고 일정을 마무리. 



흔히 웅장하다고 알려진 유적을 볼 때면 생각이 많아진다. 

규모는 권력의 크기를 웅변한다. 크기만큼의 열망과 환희인 동시에 그 만큼의 고통과 눈물이다. 
이렇게 매일같이 부처의 몸에 겹겹이 천을 입히기를 반복했을 저 사람의 마음은 어디에 가 닿고 있을까?
종교가 없는 나로서는 그 열망들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며 적당한 거리를 두고 객관화시켜 볼 밖에.
부처는 말없이 수백년을 그저 웃고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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