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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부터 짜증나게 했던 어떤 사건의 어두운 기운을 마음 속에서 몰아내고자, 홀로 자전거 여행을 떠났다.
딱 20일 전 경주를 다녀 왔을 때 빌린 자전거가 못내 아쉬워 이 번에는 내 자전거를 들고 갔다. 접이식 자전거의 발전은 자전거 여행에서 가장 힘든 부분인 운송의 부담을 크게 줄여주었다. 1년 반 전 교통사고 때문에 새로 구입한 접이식 자전거. 그 자전거를 들고 처음으로 자전거여행에 나섰다. 부피가 크지 않아 짐칸에 넣어도 자리를 얼마 차지하지 않는다. 사람이 없는 경우, 버스에 들고 탈 수도 있을듯. 처음에 들고 탔다가 사람이 꽉차는 바람에 짐칸에 실었다.

>> 내 인생의 두번째 자전거. 접이식 자전거. 급하게 오느라 패니어는 고사하고 짐받이도 없다. 가방을 메고 달렸더니 조금 힘들기는 했다. 그래도 기분은 짱짱!!

남해군은 남해도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남해도는 4번째로 큰 섬이라고. 시사인 부록으로 온 <걷고 싶은 길 33>을 읽던 도중 남해도를 보고 도저히 안 갈 수 없겠구나 싶었다. 블로그 검색을 해보니 자전거로 간 사람들도 꽤 되는 듯하고. 그래 그냥 갔더니...헐...남해도에 자전거 여행자라고는 여행 내내 나 말고 보지 못했다. 날씨도 계속 흐렸고, 사천-고성을 넘어가니 산과 바다를 수시로 오르락 내리락 하는데 진짜 힘들고 사람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산을 넘어갈 때마다 온 산에 턱밑까지 차오르는 숨소리말고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았다. 완벽하게 혼자라는 느낌, 그래서 나 자신과 내가 가고 있는 그 길과 그 길 주변의 풍경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순간, 내가 그 순간/그 장소에서 몸을 써서 나를 밀어내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할 수도, 할 필요도 없는 물아일체의 순간.

터미널에 도착하자 마자 바다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남해도 9시 방향에 있는 남해스포츠파크 쪽으로 향한다. 일단 바다에 닿으면 w자 모양을 그리며 반시계 방향으로 섬을 일주한다. 이렇게 돌면 섬 전체를 도는 건 아니고 반정도 도는 셈이 된다. 자전거 여행 경로를 검색하다보면 대체로 바다를 오른쪽에 끼고 달리는 게 일반적이다.(왼편에는 산비탈이나 절벽) 오른손 잡이라 그런가?? 도로체계랑은 확실히 상관관계가 있다. 반대방향으로 달리면 안쪽 도로로 달려야 하고 그러면 절벽에 붙어가는데다 바다는 또 멀리 보인다. 절벽에 붙어가면 시선이 좁아져 엄청 위험하다.

>> 출발하자마자 한 컷

>> 이런 저런 풍경을 보면서 자전거여행 모드로 돌입

>> 마을 전체가 벽을 다양한 그림으로 채웠다.

>> 해지는 섬마을. 이 벅찬 느낌을 뭐라고 말을 해야 하나??

10월말. 해가 짧아져 5시가 넘어가자 급격하게 사위가 어두워진다. 점점 흑백으로 바뀌어가는 섬마을은 뭐라 말할 수 없이 벅차다. 숙소를 구해야 할 때가 되었다. 마을을 지나가며 보니 민박집 세 글자가 선명하게 보인다. 전화를 하고 방값을 흥정하고 숙소를 잡았다. 사촌해수욕장에 딸린 작은 마을인데 1박 2일 촬영지였는지 플랭카드를 내건 민박집도 보인다. 일부러 허름해보이는 집을 찾아간다. 성수기가 지난 작은 해수욕장. 사람이 거의 없다. 이 여행의 컨셉은 '없다'가 되어간다. 그래서 썩 마음에 든다.

방에 들어갔는데 제대로 된 잠금장치도 없다. 이 마을이 살아온 분위기를 말해주는 것이겠지. 관광객이 많아지면 언젠가 잠금장치가 생길 수도 있다. 여행객에 따라서 불안함을 느낄 수도 있겠다. 식당도 없다. 민박집은 작은 구멍가게처럼 라면과 술을 판다. 라면을 끓여주신다. 공기밥 한공기 더해 3천원. 보일러를 트니 방이 뜨뜻해진다. 무한도전을 보다가 잠시 잠들었다. 책을 읽다가 다시 밤 10시쯤 되어 또 잠들었다. 조용하다~~ 할 일이 없으면 잠을 빨리 잔다. 가끔 할 일이 없을 때, 아니 정확히 말하면 뭘 할 수 있는 게 없을 때 세상에서 마음이 제일 편해질 때가 있다. 
잔다. 하루가 갔다.

>> 공기밥에 냄비라면 뚝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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