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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름한 여관에서 혼자 지내는 밤, 작은 바람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 
시끌벅적했던 삼천포항에 소리가 잦아들자, 
침묵 속에 간간히 들려오는 작은 소리들. 문득 쓸쓸해진다.
한편으로 그 작은 소리마저 없었다면...
작은 소리들이 고맙게 느껴지자 마음이 오히려 편안해진다.
학생들이 떠난 운동장, 인적이 뜸해진 시장, 어둠에 사로잡힌 항구, 아무도 오지 않던 명절...
어릴 적부터 친구들이 떠난 운동장을 혼자 바라보고 있으면 조금 외롭게 느껴지면서도
그 적적함이 싫지 않았다. 웃음과 환대로 가득한 공간은 어쩐지, 거짓말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어차피 내 의지로 어쩌지 못하는 고요. 생각을 포기하니 금새 잠든다.

아침 7시쯤 일어나 출발.
해안가를 따라가면 사천에서 빠르게 고성으로 넘어간다. 사천은 잠시 스쳐지나갈뿐이다.
고성은 공룡으로 유명하다. 뭐하나 꺼리만 있으면 그걸로 한밑천 잡아보려는 지방자치시대의
빈곤한 지역관광 컨셉이 짜증날 때도 있지만...더러는 이름값을 하는 경우도 있다.

여기 저기 온통 공룡 컨셉으로 도배된 고성은 어떨까? (도로 이름이 공룡로라니...이건 좀)
은근히 기대를 하며 공룡 박물관으로 향한다.
공룡을 좋아한다. 다큐멘터리는 거의 빠짐없이 본다. 고고학, 공룡, 미스터리, 추리, 인과관계
이런 것들을 좋아하고 이런 것들이 빠짐없이 조합되어 있는 진화 이야기를 좋아한다.

헉...그런데 아침부터 배탈이 났나? 삼각김밥에 우유로 간단히 떼우고 달리는데 배가 아프다.
도저히 주변에 화장실은 있을 것 같지 않은데 다행히 거대한 공룡 조각상이 나타난다.
........??.........해결

>> 고맙다 너희들의 큰 덩치 덕분에...

>> 공룡박물관. 월요일일에는 휴관. 애초부터 들어갈 생각 없었음. 그냥 밖에서 보는 것으로 충분.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공룡박물관 일대에서 길이 복잡해진다. 공룡박물관과 발자국 유적지 등등이 한 곳에 몰려
공룡테마파크를 이루고 있는데 박물관은 마침 월요일이라 휴관. 공원을 둘러보는 것은 돈을 내지 않아도 된다.
그냥 갈까 말까 하다가 유명한 것엔 어쨌든 꼭 보고 가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발자국 유적지로 향한다.
그리고 역시 예상대로 오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 사방이 온통 다 공룡. 좋다 좋아...

가랑비가 조금씩 떨어지는 바닷가. 자전거를 잠시 매점에 맡기고 아무도 없는 이른 아침, 공룡 발자국 유적지를 혼자
걷는데 기분이 괜찮다. 오랜 시간을 거쳐 존재를 드러낸 화석들이 저 홀로 외로움의 시간을 견뎌낸 것 같기도 하고,
인적 없는 바닷가에 홀로그램처럼, 화석으로 남아 있는 발자국을 따라 살아있는 공룡이 걸어가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화석을 보면 묘한 경외감과 함께 외로움이 깃든다.
아마도 오늘 친구가 알려준 시를 그 때 알았다면 나는 거기서 이 시를 떠올리고 있었을 것이다. 


주저흔躊躇痕/김경주

몇 세기 전 지층이 발견되었다

그는 지층에 묻혀 있던 짐승의 울음소리를 조심히 벗겨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발굴한 화석의 연대기를 물었고 다투어서 생몰연대를 찾았다
그는 다시 몇 세기 전 돌 속으로 스민 빗방울을 조금씩 긁어 내면서
자꾸만 캄캄한 동굴 속에서 자신이 흐느끼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동굴 밖에선 횃불이 마구 날아들었고 눈과 비가 내리고 있었다

시간을 오래 가진 돌들은 역한 냄새를 풍기는 법인데 그것은 돌 속으로
들어간 몇 세기 전 바람과 빛덩이들이 곤죽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썩지 못하고 땅이 뒤집어 서야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동일 시간에 귀속되지 못한다는 점에서 그들은 전이를 일으키기도 한다
화석의 내부에서 빗방울과 햇빛과 바람을 다 빼내면 이 화석은 죽을 것이다

그는 새로운 연구 결과를 타이핑하기 시작했다

<바람은 죽으려 한 적이 있다>

어머니와 나는 같은 피를 나누어 가졌다기보단 어쩐지 똑같은 울음소리를
가진 것 같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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