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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깊이 잠든 덕분에 일찍 잠에서 깼지만 개운했다. 아침 7시쯤 되었나? 늦가을 아침이라 제법 쌀쌀하고 해가 늦게 뜬다. 내가 1박을 한 곳이 해수욕장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동네를 한바퀴 돌아본다. 해수욕장이라고 해봐야 가구수가 20여채 남짓한 작은 마을. 간단히 휭 둘러보고 길을 나선다. 인사라도 하고 가려 했는데 주인도 보이지 않아 그냥 길을 나섰다.

>> 작은 해변 마을. 저 그네는 누가 탈까?

자전거를 계속 달려 아침 9시 정도 되니 섬의 제일 남단 부근에 이르렀고, 조금 더 지나자 유명한 다랭이 마을이 나타난다. 다랭이논은 경사가 급한 지역에 계단식으로 깎아 만든 논을 말하는데, 같은 농사일을 해도 노동량이 배로 들 것은 자명한 일. 자연에 적응하는 인간의 힘이 놀라운건지, 왼갖 인간의 삶을 가능케하는 자연이 놀라운건지 모르겠으나...확실히 유명해지면 그 순간 매력은 떨어지기 시작한다. 때 마침 일요일 아침이어서 그런지 다랭이마을을 어슬렁거리는 관광객들이 보이고 한 쪽에서는 펜션이나 민박을 짓고 있을 것이 뻔한 공사가 한창 진행중이다.

어쩌면 여행에서 유명한 곳일수록 겉으로 핥고 지나가는 것은 불편한 감정이 있기 때문. 그래도 아주 유명한 곳은 가야한다. 여러 경험 끝에 내린 결론. 아주 유명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더라는. 다랭이마을은 자전거를 잠시 멈추고 바라보면 마을 전체가 내려다 보인다. 카메라 줌을 당기니 마을의 모든 구조가 한 눈에 들어온다. 그래서 굳이 들어갈 생각 없이 둘러보는 걸로 만족. 남해도 섬 곳곳에서 다랭이논을 볼 수 있다.(나중에 간 울릉도는 다랭이논조차 불가능한 경사였다.)

>> 다랭이논과 마을 풍경.

시간은 어느 덧 10시가 가까워 오는데 밥을 먹을 곳이 없다. 일단 달리다가 식당이 나오면 제대로 먹으려고 했는데 식당이 잘 안 보인다. 간간히 만나는 매점도 문을 연 곳이 없다. 자전거 여행은 잘 먹어야 한다. 칼로리 소비가 많기 때문에. 그리고 먹는 즐거움 또한 여행의 재미인데...

다랭이 마을을 지나 30분쯤 달렸나?? 월포 해수욕장이 나온다. 해수욕장이면 마을이 있을테고 거기에 식당도 있겠지. 근데 비수기라 동네가 휑하니 식당도 문을 연 곳이 없다. 그 때 나를 구원해준 전단지. 중국집 스티커를 발견했다. 물어물어 근처 남면사무서 부근에 있는 중국집을 찾았다. 여행을 다니다보면 맛의 표준은 서울이 되어가는 거 같다. 가장 많은 여행객들이 서울에서 올테고 그들의 입맛에 맞추다보면 조미료가 적당히 가미되어 비슷비슷한 맛이 나올테니. 그래서 어느 식당을 가건 입맛 걱정은 별로 없다. 그래도 이렇게 외진 곳으로 들어오면 좀 더 맛이 깨끗한 느낌이 난다. 조미료도 덜 쓰고 재료맛이 조금 더 살아 있는 느낌. 그래서 꼭 짬뽕같은 걸 먹는다.

>> 월포 해수욕장. 날까지 흐려 을씨년스럽다.

>> 둘째날 늦은 아침 짬뽕. 완전 맛있다. 평소 먹던 중국집과 달리 채소가 많이 들어가 국물이 시원하고 조미료 맛도 거의 나지 않는다. 특이하다면 참기름을 넣어 고소한 맛이 강했던 점.

>> 밥을 먹고 나니 해가 많이 올라와 있다. 여행 내내 날이 계속 흐렸는데 잠시 해가 얼굴을 내밀었다.

다음 휴식 포인트인 상주해수욕장을 향해 달린다. 상주해수욕장은 남해도에서 가장 유명한 해수욕장(이더라). 계속 해안도로를 따라 달렸다. 인포같은 걸 찾지 못해 현지에서 구한 맵은 없었고, 집에서 자전거 관련 여행서적에서 찢어온 지도 한 장,  일주코스가 적힌 페이퍼  한 장이 있었다. 아무래도 정보가 성글다보니 대략적인 방향을 찾는데는 문제가 없으나 세세한 길을 찾을 때는 애매한 구석이 많다. 그래서 그냥 내키는대로 달려본다. 물어 물어 가면서. 그러다 더 좋은 길을 만나기도 하는 것이니. 일단 질러가는 길을 계속 물어 빠르게 상주해수욕장에 도착했다.



>> 멀리서 찍은 사람들이 꼭 유화처럼 아스라히 느껴진다.

>> 그냥 막 아무 길로나 가는 중에 휴식.

>> 두 번째 디카. 후지 F70EXR. 이 카메라는 확실히 풍경을 찍을 때 좋은 사진기다. 인물은 진짜 잘 안 나오고, 동영상은 최악이다. 대부분 풍경 사진을 찍는 나에게는 적합한 카메라. 근데 찍으면 찍을수록 더 좋은 카메라가 욕심난다.


>> 바다에 뭔가를 빌고 있는 사람들...햐 요새도 이런 게 있군.

>> 상주해수욕장. 멀리서 보니 이쁘구나.

해수욕장에서 잠시 빵과 우유로 끼니를 때우고 다시 출발. 대충 점심이 되었다. 햐...근데 예상은 했지만 여기서부터가 장난 아니다. 이미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오르막과 내리막의 반복이 시작되었지만...점점 오르막의 난이도가 올라간다.

>> 오르막이 많으니까 이런 표지판이 나오기 시작한다. 이 표지판을 볼 때마다 묘한 안도감과 성취감이 생겨. 근데 신나게 내려가면 또 다시 오르막.

자전거 여행에서 오르막에 대한 묘사가 차지하는 분량이 상당한 건 당연하다. 오르막과 내리막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며, 험난한 지형을 빨리 만나면 쉽게 여행이란 상황 속에 몰입할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남게 되는 것은, 흡사 기관처럼 에너지를 흡수하고 소비하며 조금씩 단련 또는 마모되어가는 육체의 메커니즘에에 대한 인식. 그리고 길에 대한 끝없는 생각의 재고.

처음에는 오르막이 너무 멀어보이고 즐거운 내리막길에서도 다음 오르막을 걱정하게 된다. 몸은 여전히 게으르고, 따라서 저항한다. 일상적인 삶으로부터 떠나왔으나 그 일상을 그리워하는 몸은 어느 정도 이상의 육체적 고통을 거부한다. 몸은 모든 것을 다 쓸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그렇게 몇 번 씩 같은 상황에서 결심과 포기를 반복하다 보면, 인내심은 서서히 오른다가 어느 순간 질적으로 달라진다. 마치 저 먼 길을 언제 다 가려고 저러나 싶게 느릿느릿 페달질하며 나아가는 시골 할아버지처럼. 길의 막막함과 예측불가능함을 받아들이면서 몸은 비로소 제 것을 다 쓸 준비를 한다. 힘으로 정복하려고 하면 언덕을 오를 수 없으나, 서두르지 않고 조금씩 조금씩 나아가면 어느새 끝에 도달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 저기 보이느 저 살벌한 문이 평화의 집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당신도 나와 같은 상상을 하고 있으리라...

>> 바람을 막기 위해 심어놓은 방풍림도 가을의 일부가 되어 간다. 
 

>> 당나무.

섬 동쪽에 이르면 관광지가 뜸해 지면서 여행도 조금 한가해진다. 송정해수욕장에서 한참 달리면 물건리와 독일인마을이 나타난다. 독일인마을을 왜 관광지로 인식하고 사람들이 몰리는지 모르겠다. 외국인들이 모여 살면서 그리 된건지 아기자기한 주택들이 줄지어 나타나지만 그건 유럽에 있을 때나 이쁘지 한국에 가져다 놓으면 그렇게 이쁘게 보이지 않는다. 펜션단지랑 크게 차별점이 없다. 그래서 독일인 마을 맞은편 물건리로 들어간다. 이유는 없고 그냥 일주도로만 타고 달리기가 지겨울 때가 되어서.


>> 멸치액젓 담근 항아리통. 마을에서 공동으로 관리한다고. 항아리마다 주인 이름이 붙어 있다.

>> 날이 활짝 갠 하늘을 배경으로 자전거도 찍어 보고, 마을 풍경도 찍어 보고. 추수는 거의 대부분 끝난 상태.

이제 남해도 여행은 얼추 끝나간다. 완전히 한바퀴 돌아 출발점으로 다시 갈 수 있으나, 남해도만 목표로 한 여행이 아니기 때문에 다리를 건너 창선도로 넘어간다. 창선도 역시 섬이름인데 행정구역은 남해군에 속해 있다. 창선도에서는 크게 지척거릴 일 없이 국도를 타고 최대한 빠른 길로 달려 다시 사천시로 넘어간다. 남해도에서 창선도, 다시 창선도에서 사천시로 넘어가는 길은 모두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섬들은 모두 육지의 일부처럼 연결되어 있다.

>> 지나는 길에 잠깐 교정에 들러 한 컷. 어디든 여행을 가면 학교에 가본다. 운동장에서 아련하게 들려오는 그 소란스러움이 좋다. 뭔가 정겨우면서도 조금 쓸쓸한 듯한 느낌이 좋다.

>> 원시 어업 죽방렴. 철제빔으로 기둥을 세우고 그물을 쳐서 지나가는 물고기를 잡는 원시적 형태의 고기잡이. 원래는 철제빔 대신 대나무를 썼다고 해서 죽방렴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 창선도 넘어가는 다리

>> 사천 넘어가는 다리. 여러 개의 다리를 지나 사천에 도착.

바다를 따라가다 보면 사천은 그냥 잠시 스쳐 지날 뿐. 곧바로 고성에 이르게 된다. 사천에 대해 아는 것은 강달프로 유명해진 국회의원 강기갑 아제가 살던 동네라는 것. 암튼 사천에 이르자마자 삼천포항으로 향했다. 어느 덧 해가 저물고 오늘 머물 숙소를 알아봐야 한다. '삼천포로 빠졌다.'는 표현을 자주 쓰는데 그 삼천포가 정말 있는 거였구나 하는 생각말고 나는 항구를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멀리서 항구를 보는 건 좋아하지만 항구 특유의 물비린내와 생선 냄새에 약하기 때문에 항구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다. 삼천포는 일제 시대 때 수탈 경로로 쓰여 번성했던 항구라고. 지금도 여전히 시끌시끌하고 사람도 많고 체계도 무질서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별 매력이 없는 고로 빠르게 숙소를 잡았다. 여관을 잡았는데 2만 5천원. 하~~게스트 하우스 말고 일반 여관중엔 젤 싸다. 싸건 말건 역시 광속도로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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