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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좋아하는 편이긴 하지만 매니아라고 하기는 뭐하고 그저 일 년에 몇차례 꼬박꼬박 가는 것으로 만족하는 수준인데. 그나마 대체로 겨울산에 대한 기억이 전부라, 한 번 쯤은 단풍놀이를 제대로 가보고 싶은 생각에 설악산을 찾았다. 


국립공원 중에 산장을 운영하는 곳은 설악산, 덕유산, 지리산 세 곳 뿐. 게다가 설악산 가을 단풍이 절정이라는 10월 중순에 산장예약하기가 이렇게 대단한 것인줄 예전엔 미처 몰랐다. 오전 10시부터 인터넷 예매가 시작되는데, 미리 로그인을 해놓고 초를 다투며 광클해대는 사람들. 며칠 지켜본 결과 10초도 안되어 죄다 매진이 되는데 어느 날은 무려 4초만에 모든 자리가 매진되더라. 그러나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어디나 방법은 생기기 마련. 수시로 들어가보니 예약취소로 나온 자리가 가끔 한 두 개씩 생긴다. 문제는 원하는 시간, 원하는 장소에 딱 맞게 자리가 나는 게 아니라는 거. 그래도 일주일 내내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본 결과 자리를 하나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산에 가기 전 날에 첫 눈이 왔다. 아니나 다를까. 정상부는 이미 겨울이었고, 단풍은 이미 다 지고 없었다. 그리하여 초입부는 아직 여름처럼 나무들이 쌩쌩하고, 중간부분엔 어제 내린 눈이 녹아 물이 줄줄 흐르고, 상층부는 이미 겨울이 와서 길이 얼고 있었으며 단풍은 그저 간간히 보이는 정도였다. 그래도 설악산은 설악산이다. 그 웅장한 느낌, 여전히 가슴벅차고 아름답다. 


단풍놀이가 절정일 때라 소공원 방향으로는 사람이 너무 많다. 특히 차가 많아서 진입하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이걸 미리 염두해두고 가장 사람이 적게 다니는 오색 약수 쪽(남설악)으로 진입한 것은 정말이지 신의 한수였다. 게다가 오색쪽은 입장료도 안받더라. 근데 그냥 전망으로만 보자면 오색쪽은 설악산의 매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등산로는 아니다. 동해바다 반대 편인데다가, 정상에 오를 때까지 전망이 거의 트이지 않아 설악의 아름다운 선을 느낄 수 없다. 경사는 시작부터 내내 가팔라서 가장 빠르게 정상에 오르지만 여느 등산로와 설악의 차별성을 느끼기엔 충분치 않다. (사람들이 많이 가는 길은 다 이유가 있더라) 그러면 어떠랴. 다음날 소공원쪽으로 내려가면서 충분히 즐길 수 있는 것을. 천불동 계곡 쪽으로 내려가면서는 조금 가을의 정취를 느낄 수가 있었다. 그냥 단풍놀이만 온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 소공원을 재수 좋게 잘 빠져나와 간단한 산행을 마무리했다. 



동서울터미널에서 속초행 버스 -> 오색약수(남설악 등산로) 쪽 하차(2시간 30분)-> 중청 대피소 -> 소청 대피소(5시간) -> 취침->6시 일어나서 간단히 먹고 출발 -> 희운각 대피소->천불동->소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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