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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xiom은 수학 용어로 공리를 뜻한다. axiom의 어원은 그리스어 단어인 axioma에서 왔으며 '그 자체로 명백한 진리'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수학에서 공리는 증명하지 않고 참으로 받아들이는 명제를 의미한다. 즉, 논리의 출발점이다.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에서도 수학은 부분적으로 발전했다. 그리스와 비슷한 시기 중국에서도 제법 높은 수준의 수학지식이 사용되었다. 어떤 내용은 그리스보다 앞선 것도 있었다. 그러나 이들의 지식은 결코 학문으로 정립되지 못했다. 차라리 측량에 가까웠다. 수학은 측량을 위한 보조도구에 불과했다. 높이가 같은 원뿔과 원기둥의 부피비가 왜 1:3이냐고 물으면 이집트인이나 메소포타미아인은 실제로 원뿔과 원기둥 모양의 그릇을 만들어 부피를 측정했을 것이다. 원뿔에 물을 가득 담아 원기둥에 부었더니 3번 만에 꽉 차더라 하는 식으로. 이집트라면 모래를 채웠을 가능성이 높겠지만. 그들은 원주율을 3.1이라고 쓰기도 했고 3.2라고 쓰기도 했다. 측량 결과에 따라 적당한 근삿값을 사용했다.


그러나 그리스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들은 논리를 사용했다. 공리를 설정하고 개념은 명확히 정의된 용어만 사용했다. 이들로부터 논리적 인과관계로 모든 명제를 이끌어냈다. 민주주의가 논리로 상대를 설득하는 것처럼 그들은 수학적 사실을 논리로 증명했고 방대한 언어체계를 세웠다. 비로소 수학은 독자적인 학문이 되었다. 그들에게 측량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부피비가 정확히 2.999배인지 혹은 3.001배인지 심지어 3.0000000000001배인지는 측량으로 알아낼 수 없다. 경험은 항상 미세한 차이를 유발한다.


이 집요함 덕분에 그리스 수학은 보편적 언어로 자리잡았다. 수학지식은 여러 문명으로부터 흘러들었지만 프레임을 지배한 건 그리스 수학이다. 오늘날 전세계 거의 모든 수학책은 그리스 시대 정립된 언어체계를 따라간다. 그리스 수학은 고도의 논리학이다.


"점은 쪼갤 수 없는 것이다.”


유크리드 [원론]에 등장하는 첫번째 정의다. 이 정의가 정립되기까지 데모크리토스의 원자(아토모스)론부터 피타고라스, 제논, 플라톤, 아르키메데스에 이르는 엄청난 철학적 논쟁이 계속되었다. 현실에서는 어떠한 점을 그려도 면적이 있다.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즉 길이도 면적도 없는 존재로서 점은 현실에 없다. 당연히 그리스의 수학은 고도의 형이상학이다. 완벽하고 이상적인 개념은 오직 우리 머리 속에만 있다. 이렇게 명확히 규정된 말 하나 하나가 모든 논리의 출발점이 되어 준다.


[원론]은 2000년간 유럽에서 수학교과서로 쓰였으며(물론 중세 시대 단절이 있긴 했지만) 성경 다음으로 두 번째로 많이 읽힌 책이 되었다. [원론]은 알렉산더 대왕의 후계자 프톨레마이오스 1세부터 중세 후반의 스콜라학파를 거쳐 뉴턴, 데카르트, 칸트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거인들에게 끊임없는 영감을 불러 일으켰다. 뉴턴의 <프린키피아-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 데카르트의 <방법서설>, 스피노자의 <에티카>는 물론 미국의 독립선언문에 이르기까지 근대를 떠받치는 수많은 책과 문서들이 [원론]의 형식을 따랐다. 근대국민국가는 공리를 정점으로 하는 수학적 논리체계 위에 세워졌다.


한 예로 미국의 독립선언문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한다.


“다음과 같은 사실을 자명한 진리로 받아들인다. 즉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고, 창조주는 몇 개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했으며, 그 권리 중에는 생명과 자유와 행복의 추구가 있다. 이 권리를 확보하기 위하여 인류는 정부를 조직했으며, 이 정부의 정당한 권력은 인민의 동의로부터 유래하고 있는 것이다. 또 어떤 형태의 정부이든 이러한 목적을 파괴할 때에는 언제든지 정부를 개혁하거나 폐지하여 인민의 안전과 행복을 가장 효과적으로 가져올 수 있는, 그러한 원칙에 기초를 두고 그러한 형태로 기구를 갖춘 새로운 정부를 조직하는 것은 인민의 권리인 것이다.”


모든 사람은 왜 평등하냐고 물으면 안 된다. 왜 인민 스스로 헌법을 부정하는 정부를 폐지하고 새로운 정부를 조직해도 되느냐고 물어서는 안 된다. 증명 없이 참으로 받아들이는 대전제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대한민국 헌법 1조다. 이 한 문장이 공리의 격을 갖추기까지 얼마나 험난한 세월을 지나왔는가 생각해보라. 공리란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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