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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글/생각

비폭력에 대해서 생각한다.

칸나일파 2018. 1. 27. 02:18
1. 
나는 비폭력주의자다. 태생적으로 곱디 고운 정서를 가져서 그런 게 아니라 병역거부를 하고 내 안에 내재된 남성성과 폭력성에 대해 성찰하고(오글거리는데 뭐라 표현할 말이 없다) 억지로 누르고 노력하고 그렇게 오랜 시간 체화되어 지금은 자연스러워졌다. 

2. 
한국사회 비폭력은 뭔가 개념이 너무 왜곡됐다. 대표적 비폭력 저항인 시민불복종은 법이 정의롭지 못하면 그 법을 어겨서라도 싸우자는 거다. 시민의 정의가 법보다 우선하니까. 그냥 시키는대로 하자는 게 비폭력이 아니다. 원래 비폭력 저항은 권력자들이 말하는 질서유지 같은 거랑은 완전 거리가 멀다. 

비폭력 투쟁의 대표적 사례인 간디의 소금행진 같은 경우 막으면 그냥 간다. 그래서 막 총에 맞고 그러면서도 그냥 간다. 자신들에게 정당성이 있다는 믿음이 있으니까. 그런가하면 흑인민권운동의 서막을 알린 몽고메리 버스투쟁은 어떤가. 흑인은 앉지 못하게 법으로 규정된 버스에서, 그 금기를 넘고 자리에 앉았던 행동으로부터 싸움은 시작됐다. 

비폭력=합법=국가가정해놓은선을넘지않는 것. 이것은 완전히 조선일보 같은 보수언론이나 권력자들이 설정해놓은 프레임이다. 광우병 촛불집회 초반을 떠올려보라. 저들이 불법이라 말하고 잡아가면 닭장투어라 조롱하면서 기꺼이 잡혀가던 그 용기가 정당성을 키웠고 사람들의 용기를 북돋웠다. 역사에 이름을 남긴 비폭력 투쟁은 사람들의 지지를 얻어내기 위해, 더 많은 사람에게 영감을 주기 위해 더 좋은 방식을 끊임없이 고민하며 나온 결과물이며 대부분 다 불법이었다. 나는 경찰병력을 물리력으로 이기는 게 가능키나 한 일인지가 의심스럽고 그 부작용이 더 크기 때문에 직접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 것이지 권력자들이 요구하는대로 하자고 비폭력을 말하는 게 아니다. 

내 기준에서 차벽을 넘어가는 건 전혀 폭력이 아니다. 강제집행 들어오는데 스크럼 짜고 버티는 거 폭력 아니다. 그게 효과적인지에 대해서 토론하는 건 환영이다. 이를테면 그 차 넘어가서 뭐할건가. 바로 연행인데. 그렇게 다수가 연행을 각오하고서라도 다 넘어가면 당연히 새로운 장이 열릴 수도 있다. 아닐 수도 있고. 아무튼 그 방법이 좋은 방법인지 아닌지 얘기할 수 있다. 그런데 저들이 설정해놓은 선을 넘어가면 폭력쓰지 말라거나 비폭력 외쳐대는 모습은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3. 
비폭력은 갈등을 감추고 다 좋게 좋게 지내자는 게 아니다. 갈등 해결수단으로 타인에 대한 직접적 폭력을 쓰기 보다 다른 해법을 찾자는 것이다. 가끔 집회를 가보면 경찰들도 똑같은 시민이다. 그들을 비난하지 말자 이러는데. 똑같이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동등한 시민이라는 걸 누가 모르나. 백 번 양보해 강제로 끌려간 의경이야 불쌍하다는 생각도 든다.(병역거부 하라고까진 말 못하겠다.) 하지만 경찰간부들은? 저 부역자들 누구 하나 양심선언하거나 처벌 받은 경우가 있나? 아이히만도 공무원이라 시키는대로 했을 뿐이라고 그러는데 그런 것까지 다 불쌍하고 어쩔 수 없다고 봐주면 시스템이 어떻게 바뀌나? 공권력을 남용하고 시민을 적으로, 범법자로 여기며 권력자 하수인 노릇만 해 온 경찰의 역사가 있다. 개개인에게 증오를 품자는 게 아니고 시스템의 오류를 지적하자는 이야기다. 

p.s 비폭력이 그렇게 좋으면 가장 강력한 비폭력주의자들인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부터 인정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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