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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수같은 투덜이도, 정형돈같은 내성적인 사람도, 정준하처럼 조금 뒤쳐지도 사람도 모두 끌어안고 가는 유재석. 그만한 남성 리더쉽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았고, 그들이 성장해가는 과정에서 내뿜는 케미를 지켜보는 재미에 지난 십년 간 무한도전을 대체할 만한 프로그램은 없었다.

프로레슬링 마지막회 만신창이가 된 정형돈을 보호하려고 일부러 자기 무릎을 던진 유재석과 그걸 알고 유재석을 꼭 끌어안은 정형돈. 배경에 흐르는 Ben folds <Still fighting it>과 스틸컷. 그거 보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프로레슬링 특집은 가장 감동적인, 하강을 예비하는 절정이었다. 그래서 그걸 지켜보는 감정은 복잡했다. 정형돈이 방송 복귀후에도 무한도전에 결합하지 않은 선택이, 너무 깊이 이해가 됐다. 그 절정의 순간에만 나올 수 있는 감동은 가슴 벅찬 크기 만큼이나 고통스럽고 힘겨운 것. 누구도 일상을 그렇게 살 수는 없다.

그 뒤부터 조금씩 무한도전도 내 삶에서 멀어져갔다. 얼마 전 군대체험특집을 보면서도 그런 생각이 계속 들었다. 여전히 재밌지만 여전하지 않은 무엇. 특히 매사에 너무 열심히고, 무엇보다 그 어떤 담론에도 이견을 제시하지 않고 긍정으로 일관하는 유재석을 보고 있는 게 영 별로였다. 유재석은 이제 너무도 반듯해서 항상 옳은데 건조한 말만 하는 사람 이상으로 잘 보이지가 않는 거다.

그냥 Ben folds <Still fighting it>가 흘러나와 감상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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